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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빛 장인의 노렌
노렌 (Noren)
천연 소재를 사용하여 손으로 직접 짜고, 염색하고, 바느질한 쪽빛 노렌(일본식 가림막)이 완성되었습니다.소재는 일본의 전통 마(麻) 종류 중 하나로 알려진 ‘카라무시(모시)’를 사용했습니다. 천 위에는 행운을 부르는 일본 전통 길상문인 ‘구름과 말’, ‘달팽이와 돌담길’, ‘파도와 날치’ 등 세 가지 문양을 담아냈습니다.
조몬의 기억을 짜다
원시 섬유에서 한 올의 실로: 고대 직물의 느린 부활
‘야카라무시’라 불리는 야생종 모시로 만든 이 원단은 마치 조몬 시대의 직물을 현대에 다시 살려낸 듯한 느낌을 줍니다. 원시적인 수작업 방식을 통해 섬유를 채취하고 실을 자아내어, 기후현의 직물 작가가 베틀로 짜내기까지 약 한 달 반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습니다.
염색을 담당한 쪽염색 장인에 따르면, 야생 모시 자체가 매우 희귀할 뿐만 아니라 이를 깊은 멋이 느껴지는 원단으로 짜내는 기술 또한 극히 드물다고 합니다.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이지만, 완성된 원단은 원시적인 힘과 가벼움, 그리고 유연함을 동시에 지닌 유일무이한 풍격을 자랑합니다.
쪽빛의 원고
붓끝으로 빛과 그림자를 엮어, 쪽빛의 영혼을 깨우다
쪽염색(Aizome)을 맡은 이는 서울을 비롯해 도쿄 오모테산도의 ‘Badou-R 본점’과 ‘교토점’ 등 45R의 주요 플래그십 스토어에 걸린 수많은 노렌을 제작해 온 도쿄 오메(青梅)의 쪽염색 명장입니다.
이번 문양 역시 전통 방염(Bosen, 염색 방지)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염색하지 않을 부분에 쌀풀(Komenori)을 바른 뒤 쪽빛 염색 통에 담그는 공법입니다. 쌀풀의 두께와 염색 횟수를 조절하여 쪽빛 특유의 깊고 은은한 농담(濃淡)을 표현합니다.
노렌의 최종 크기는 세로 189cm이며, 가로 45cm짜리 천 세 폭을 이어 붙여 총 너비 135cm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전통 미학이 담긴 ‘야마토 비율(Yamatohi, 1:√2의 일본식 황금비)’을 반영하여 시각적인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줍니다.
고대 나무비늘의 잔향
조몬의 정신을 담은 밤나무 상자: 세월과 감즙이 빚어낸 백 가지 질감
노렌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용 밤나무 상자에 보관합니다. 단단하고 목재의 결이 아름다운 밤나무(Kuri)는 조몬 시대부터 널리 쓰인 일본의 전통 목재입니다. 이번에 사용된 목재는 교토점을 비롯해 45R의 수많은 매장을 지어 준 전속 대목장(도편수)이 엄선하여 제공해 주었습니다.
상자는 교토의 목공 장인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여러 개의 판자를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두꺼운 밤나무 각재 하나를 상자 모양 그대로 깎아내어(일체형 통원목 공법)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통원목을 조각하듯 파내어 만들었기 때문에 접합선이 없으며 나이테의 결 또한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상자 뚜껑 역시 같은 방식으로 깎아서 제작했습니다.
상자 표면에는 ‘우즈쿠리(Uzukuri, 평식 평고)’라는 전통 목공예 가공을 더했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는 부드러운 여름 테(Natsume)와 단단한 겨울 테(Fuyume)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즈쿠리’ 공법은 표면을 문질러 부드러운 여름 테만 깎아내어 단단한 겨울 테를 도드라지게 함으로써, 입체적인 나무의 질감을 극대화하는 기술입니다.
여기에 밤나무 톱밥과 철 성분을 반응시켜 만든 천연 염료로 상자 전체를 철 매염(Tetsu-baizen)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충 방지, 방수, 부패 방지 효과가 있는 감즙(Kakishibu, 감칠)을 입혀 내구성을 최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사면으로 흐르듯 이어지는 일체형 나이테의 아름다움과 입체적인 표면 질감이 어우러져, 상자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냅니다. 장인이 온 영혼을 다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입니다.
노렌은 ‘집안을 지키고’ ‘가문의 역사를 이어 나가는’ 상징으로서 매우 소중한 의미를 지닙니다. 모쪼록 오랫동안 아끼며 대를 이어 물려주시기를 바랍니다.